여자는 친밀함과 사랑을 굳이 다른 것으로 구분하려 든다. 반면 남자는 친밀함과 사랑을 늘 같은 것이라고 착각한다. 세상에서 일어나는 사랑의 비극 중 8할은 친밀함과 사랑의 관계를 자기 처지에 따라 다르게 해석하는 이런 남녀 간의 차이에서 잉태되는 건 아닐까. 25일 개봉되는 프랑스 영화 친밀한 타인들은 친밀함이 때론 사랑보다 지독하다는 사실을 배우의 말과 얼굴 표정, 이렇게 단 두 가지 방식으로 재치 있고 가슴 사무치게 전달한다.
남편과의 결혼생활에 대한 고민으로 정신과 의사를 찾기로 결심한 안나(상드린 보네르). 그는 오피스텔의 방 번호를 착각해 그만 재정상담사인 윌리엄(파브리스 루치니)의 사무실로 들어간다. 안나는 다짜고짜 은밀한 사생활을 털어놓기 시작하고, 안나의 이런 모습이 싫지 않았던 윌리엄은 모른 체하고 이야기를 들어준다. 안나의 상담 행각은 이어지고 어느 날 안나의 남편이 윌리엄 앞에 나타난다.
이 영화는 비현실적이고 극단적인 이야기 설정을 통해 가벼운 농담을 주섬주섬 던지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지만, 알고 보면 남녀 간 사랑에 대한 무섭도록 놀라운 진실을 묻어 두고 있다. 사랑보다 중요한 건 친밀함이며, 친밀함은 그저 누군가에게 나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또 누군가의 이야기를 허물없이 들어주는 커뮤니케이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 말이다. 영화는 말하기 좋아하는 여자와 듣기 좋아하는 남자, 친밀하지 않은 남편과 친밀한 타인, 그리고 친밀함과 사랑의 절묘한 대비를 통해 일반적인 로맨스 영화가 던지는, 딱 떨어지는 해피엔딩에서 한 발짝 더 나간다.
친밀한 타인들의 매력은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대사들 속에서도 두 남녀가 시종 단 한마디도 사랑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. 영화는 두 사람의 시선이 잠깐 흔들리고 입맛을 순간적으로 다시는 표정을 고스란히 잡아내면서도 끝내 그들의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전지적 시선을 거부한 채 알 듯 모를 듯한 절묘한 거리두기를 이어간다. 세상엔 비록 악수밖에 나누지 않는 남녀지간이지만 섹스보다 더 야한 관계가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위해서 말이다. 어쩌면 사랑한다고 말하는 순간, 사랑은 끝난 건지도 모르겠다. 사랑한다면 이들처럼의 파트리스 르콩트 감독. 서울 씨네큐브 단독 개봉. 15세 이상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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